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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 썰

MBK의 두산공작기계 Exit으로 보는 LBO 전략

by Mr.Market 2022. 5. 8.

2008년. 두산건설이 사운을 걸고 진행한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마천루 '일산 위브더제니스'의 대규모 미분양이 발생했고 이로 인한 두산건설의 손실은 조 단위에 달했다. 이를 지원하고자 두산그룹 계열사들은 가진 현금에 부채까지 동원해 이를 지원했지만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핵심 계열사인 두산중공업의 원전사업마저 휘청이기 시작했고 결국 두산그룹 전체는 재무위기에 빠지게 된다. (일산 위브더제니스와 두산그룹의 위기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른 포스트에서 다룰 예정) 이를 해결하기 위해 두산 그룹은 '돈이 되는' 계열사들을 팔아넘기기 시작한다.

 

 

자료 : 조선일보

 

이 중 가장 큰 규모의 딜은 2016년 3월에 있었던 공작기계사업부 지분 매각이다. 두산인프라코어는 공작기계사업부의 지분 100%, 그러니까 분할 이후의 '두산공작기계'를 MBK파트너스에 1.13조에 매각한다.

 

자료 : 머니투데이

 

MBK파트너스는 PEF, 한국어로 사모펀드다. 기업의 인수합병에 있어 재무적 투자자(Financial Investor, FI)로서 역할을 수행하며 이익을 남기는데, 재무적 투자자는 전략적 투자자 (Stretegic Investor, SI)와 대비되는 표현으로 어떤 기업을 인수함에 있어 전략적인 시너지보다는 재무적으로 접근, 구조조정을 통해 '재무적' 기업가치를 높여 재매각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는 투자자를 말한다. 표현이 좀 어려우니 예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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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마포구에 사는 김덕배 씨가 자본금 1억 원으로 치킨 법인 '덕배네 치킨'을 차렸습니다. 덕배씨는 20년 간 신라호텔에서 치킨을 연구한 쉐프 중의 쉐프 출신으로 그가 개발한 특제 양념 소스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창업 이후 3년이 지난 시점에 마포구 치킨 점유율을 5%까지 끌어올렸지만 4년 째 되는 해, 불운하게도 조류 독감이 장기화되며 원재료를 구할 수 없어 적자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매월 나가는 월세와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었던 덕배씨는 본인이 살고 있는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습니다. 그래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덕배씨는 주택담보대출을 갚기 위해 '덕배네 치킨'을 매각하고자 치킨 집을 내놓는다는 공고를 냅니다. 

 

여기서 두 명의 투자자가 치킨집 인수를 제안해온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한 명은 충남 지역에서 닭고기 생산 및 가공업으로 큰 돈을 번 목축업자인데 조류독감은 어차피 지나가기 마련이니 이럴 때 치킨집을 인수해서 요식업에 진출함과 동시에 본인이 경영하는 닭농장에서 생산되는 닭고기의 안정적인 거래처를 확보하는 '수직계열화'가 그 목적입니다. 또 한 명은 여의도 고층빌딩에서 돈을 굴리는 투자자입니다. 그의 판단에는 '덕배네 치킨'이 위치한 곳의 임대료가 너무 비싸고, 직원 고용도 너무 많은 상태입니다. 임대를 빼서 후미진 곳으로 옮기고 보증금을 뺴서 빚을 갚고 배달 직원도 줄이고 배민 라이더들을 고용해서 배달비를 소비자에게 전가하면 충분히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덕배씨가 개발한 특제 소스를 토대로 프랜차이즈화를 한 후 재매각하면 수익이 많이 남을테니 돈되는 사업이라는 계산하에 인수를 제아합니다. 여기서 인수 및 합병을 추진하는 목적에 따라 목축업자가 SI, 전략적 투자자이고 투자자는 FI, 재무적 투자자입니다. (현실에서는 인수대금이 너무 많다면 SI와 FI가 협력해서 컨소시엄을 구성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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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참'을 SI에 매각해 200억을 거머쥔 유튜버 장사의 신, 은현장

 

어쨋거나 FI인 MBK파트너스는 1.13조에 두산인프라코어를 인수합니다. MBK는 어디서 이 많은 돈이 나서 굴지의 대기업 자회사를 인수했을까? 정답은 대출이다.

 

자료 : 더벨

총 인수대금 13,000억 원 중 7,800억을 대출로 조달했다. 우리가 주택을 살 때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것과 같다고 보면 쉽다. 담보는 인수 대상회사인 두산공작기계의 지분이고 출자자는 기금, 은행, 보험, 캐피탈사 등의 금융기관이 대부분이다. 이들을 결합해서 신디케이트를 만드는 역할을 증권사 IB의 M&A부서가 담당하게 되며 이를 M&A 자문이라고 한다. 이율은 회사의 현금창출능력이나 자산가치에 따라 다르겠지만 글을 작성중인 2022년 5월 현재 약 5~6%에 달한다. 중요한 점은 대출을 받는 주체가 FI인 MBK 파트너스가 아니라 두산공작기계라는 점이다. 자기 주식을 담보로 잡히고 7,800억을 대출 받았으니 두산공작기계는 이제 연 400억원의 이자를 감당해야한다. (이자율 5% 기준)

 

 

두산공작기계 EBITDA

두산공작기계의 2016년 EBITDA는 833억, 이자를 감당하고도 400억이 남는 수준이다. MBK 파트너스에 피인수 1년 뒤인 2017년 EBITA는 2배 이상 상승해 1937억을 기록한다. 인력감축 등의 구조조정은 없었고 미국, 독일 등 해외에서 공작기계 수주가 크게 늘어난 점이 상승을 견인했다. MBK의 베팅 타이밍이 적절했던 것이다. MBK는 이제 인수금융에 대한 이자 400억을 내고도 꽤나 많은 돈을 남길 수 있는 상태가 됐다. 

 

2년 반이 지난 2018년 6월 MBK파트너스는 리캡(recapitalization, 자본재조정)을 실시한다. EBITDA가 2배 이상 늘었으니 기업가치도 두 배 이상 늘었고, 이에 따라 두산공작기계 지분을 담보로 1.15조를 추가 대출 받아 기존 대출금 7,800억 중 5,300억을 상환하고 4,700억원을 MBK파트너스가 가져간다. 최초 두산공작기계 인수 시 3,550억원의 자기자본을 태웠으니 1년 만에 벌써 원금은 전부 뽑아냈고 추가로 1,150억원을 벌어들인 셈이다. 대출금이 1.5조가 됐으므로 두산공작기계는 5%의 이자로 연간 750억원을 부담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뼛속까지 빨아먹힌 셈이다.

2018년 6월 1차 리캡, 자료 : 더벨

다시 2년이 지난 2020년 6월, MBK파트너스는 2차 리캡을 통해 1.4조를 대출받는다. 이 중 7,600억은 기존 대출을 상환하고 5,400억은 MBK파트너스가 가져갔다. 이로써 MBK가 출자환급을 통해 가져간 돈은 1.1조. 투자원금의 3.07배에 달한다. 극단적으로 얘기해서 당장 두산공작기계가 파산해도 MBK는 4년만에 투자원금 대비 2배, 7,450억원의 수익을 거둔 셈이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MBK파트너스는 두산공작기계의 지분 100%를 여전히 가지고 있다.

 

2020년 6월 2차 리캡, 자료 : 더벨

1년이 더 지난 2021년 8월, MBK파트너스는 5년 간의 동행을 끝내고 두산공작기계 지분 100%를 디티알오토모티브에 매각한다. 디티알오토모티브는 자동차용 배터리, 타이어, 부품 등을 제조하는 기업으로 특히 방진부품 제조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는다. 두산공작기계 매출 중 40%가 자동차 관련이므로 시너지를 예상하는 전략적 투자인 셈이다. 이로써 FI인 MBK파트너스는 기업을 인수해 가치를 극대화시켜 SI인 디티알오토모티브에 매각함으로써 딜을 종결한다. 2.4조의 현금을 거머쥔 MBK가 2차 리캡을 통해 대출받은 1.4조를 갚고나면 손에 쥐는 돈은 1조, 1-2차 리캡에서 회수한 현금이 1조이므로 MBK는 3,550억으로 인수 5년 만에 2조를 벌어들인 셈이다.

 

단돈 3,550억(?)으로 7,800억을 대출받아 1.13조짜리 기업을 인수하고 가치를 극대화해 2.4조에 매각하며 5.63배를 벌어들인 MBK파트너스의 인수 기법을 LBO(Leverage Buy Out)라 한다. 개인들이 갭투자를 통해 부동산을 고레버리지로 사들이고 부동산 가치가 상승하면 매각해서 차익을 남기는 방법과 다를 게 없다. 경매를 통해 공실인 상가를 대출받아 사들이고 임차인을 구해서 가치를 높인 뒤 매각하는 방식이 더 유사하다고 해야할까. 

 

국내에서은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와 관련해서 사모펀드가 부도덕하다는 인식이 만연해있다. 사실 이는 M&A 본가인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영화 '귀여운여인'이나 '남의돈'에서도 사모펀드는 악덕 기업사냥꾼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자금조달이 어려운 상황, 그러니까 금융권에서 자금을 빌리기 어려워 매각을 고려해야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자금을 투입해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을 정상화하고 살려낸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영향이 엿보이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잣대를 들이댄다고 이들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니 도덕적인 판단은 미뤄두고 앞으로 이들의 행보를 주목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