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고양시 일산서구 탄현동에 위치한 높이가 무려 230m에 달하는 59층 높이의 마천루 일산 위브더제니스가 11년 간의 장고(?) 끝에 완판됐다. 63빌딩이 249m, 타워팰리스 3차의 높이가 260m니 2008년이라는 착공연도를 감안하면 '일산의 타워팰리스'라 불릴만한 호화 주상복합 개발사업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로 전세계의 경제가 휘청이던 때 아닌가. 2008년에 삽을 떴다니...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면 맞다. 일산 두산위브더제니스는 2008년에 첫 삽을 뜬 이후 박근혜 정부의 금리인하와 부동산 경기부양에도 완판을 못하다가 Covid19로 인한 유동성 대풍년의 시기를 맞이해 겨우 100% 분양을 달성했다. 더군다나 최근 원전으로 부활한 두산그룹의 붕괴를 이끈 신호탄의 역할까지 했으니 그 파급력이 작다고 할 수 없다. 그 내막을 알아보자. (참고로 두산건설은 더이상 두산그룹 계열사가 아니다. 작년 단돈 2,580억에 국내 사모펀드인 큐캐피탈에 매각되었다.)
2007년대 중반 IMF 이후 IT버블을 거치며 수년 간 지속된 부동산 활황이 피크아웃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시공사들은 돌파구를 찾아야했고 당시 화두로 떠오른 주제가 바로 '랜드마크 프로젝트'였다. 현대건설은 충남 태안에 9조원 규모의 사업비가 투여되는 태안기업도시를, 롯데건설은 107층 높이의 부산롯데타워로 위기를 돌파하고자했다. (2022년이 된 아직까지도 사업추진중이다.) 2000년대를 주름잡았던 타워팰리스 열풍 때문이었는지 다들 초고층에 집착을 했더랬다. 결과적으로는 곧이어 미국발 금융위기가 시작됐으니 마천루의 저주랄까.
이 글의 주인공인 두산건설도 '탄현 프로젝트'라 불리는 거대한 프로젝트에 시동을 건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탄현동에 2,772세대의 초고층 주상복합 시공을 맡은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시공사는 건물 지어주고 공사비만 받으면 되는건데 왜 그룹 전체로 문제가 불거졌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동산 개발사업에 대한 약간의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아파트든 주상복합이든 물류센터든 다세대든 부동산 개발이란 결국 땅을 사서 용도에 맞는 건물을 짓어서 필요로 하는 수분양자에게 넘기는 행위다. 토지비, 공사비, 금융비, 기타사업비를 통틀어 '총 사업비'라 하고 수분양자에게 넘기는 금액을 '총 매출'이라고 한다. 총 매출에서 총 사업비를 빼면 마진, '시행이익'이라는 사업주체의 순이익이 남는 셈이다.
여기서 시행사와 시공사, 대주단과 PF가 등장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삼성물산, 현대건설, 롯데건설은 시공사다. 이들은 많게는 몇 조에서 작게는 수백억의 자본을 들고 공사를 진행한다. 그리고 공사비를 받는다. 시행사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열세하다. 대기업 계열도 있기는 하지만 보통은 몇 십억원 정도 (사실 이마저도 빚인 경우가 많다.) 의 자본으로 사업을 벌인다. 사업 대상 토지주들에게 땅을 사고 (지주작업) 건물의 용도를 결정하고 시공사와 도급계약을 체결하며 분양까지 잘 마치면 시행이익을 챙긴다. 이쯤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시공사가 시행사보다 훨씬 돈이 많은데 직접 시행까지하면 더 벌텐데 왜 공사만 하지?" 지주작업은 짧아도 몇 년, 길면 수 십년의 세월이 걸린다. 시공사들은 사업장 하나에 붙어서 땅 주인들에게 땅 파시라고 설득하면서 직원들 인건비 쓰고 시간 버리느니 공사만 전문으로 해주고 공사비만 계속 챙기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물론 시행까지 직접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두번째 의문이 생긴다. "시행사들은 수십억으로 사업 벌인다며, 땅 살 돈이 충분한가?" 물론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대주단과 PF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PF는 Project Financing의 약자로 어떤 프로젝트 (여기서는 토지 위에 지어질 건물이다.) 의 현금흐름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는 행위를 말한다. 쉽게 말해 살 땅이랑 지어질 건물 담보잡고 돈 빌린다는 얘기다. 돈 빌려주는 이들을 '대주단'이라고 하고 증권사나 은행, 보험사, 저축은행이나 리스사 등이 그 역할을 맡는다. 담보가 확실하니 사업성만 좋다면야 돈 빌려주는 건 어렵지 않다. 어차피 고객들한테 예적금 이자주고 빌려온 돈이니까. (날리면 안되겠지만)
일산 두산위브더제니스의 시행사는 '아이앤티디씨' 라는 신생 시행사였다. 이들은 두산건설과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공사를 순항시키는 듯 했으나 인허가 과정에서 정관계에 불법적인 로비를 했음이 포착됐고 이에 더해 대출 받은 PF 자금까지 뺴돌리는 횡령까지 일삼았다는 사실이 검찰의 수사에 의해 밝혀진다. 애초에 사업을 진행할 생각이 있긴 했던건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사업이 제대로 돌아갈리 만무했고 결국 탄현 프로젝트는 좌초될 위기에 처한다. 두산건설은 공사만 맡은 만큼 빠져나오면 되나 싶지만 이게 또 그렇지가 않다. 시행사가 국민은행, KDB생명 등 대주단으로부터 받은 대출 6,500억에 두산건설이 연대보증을 섰기 떄문이다. 시공사는 건물이 끝까지 올라가고 분양을 제대로 해내야 공사대금을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공률에 따라 공사비가 지급되는 방식이 아닌 분양율에 따라 공사비가 지급되는 '분양불 계약'을 했다면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결국 '아이앤티디씨'는 사업을 진행할 수 없게 됐고 연대보증인인 두산건설이 일산 두산위브더제니스의 시행권까지 갖게 된다. 6,500억의 채무를 포함해서 말이다.
물론 두산건설도 손놓고 당한 것은 아니었다. 대출 만기연장 등을 놓고 시행사와 법적다툼을 벌였지만 애초에 시행사는 두산건설에 비해 잃을게 없는 이들, 제대로 책임을 질 수 있을리 만무했고 두산건설은 울며 겨자먹기로 모든 채무를 이행하며 꾸역꾸역 건물을 쌓아 올린다. 보통 같으면 주택담보대출로 대주단의 PF 대출을 상환하고 분양을 마치면 공사비도 챙기고 시행이익까지 챙길테니 크게 문제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떄는 2009년이었고 미국발 금융위기로 냉각된 부동산 경기는 이후에도 죽을 쒔다. 홈쇼핑으로 장기전세를 팔아보기도 했으나 시장은 녹록치 않았다. 2014년까지만해도 서울 강남에도 미분양 아파트가 널려있었으니. 두산건설은 그렇게 거대한 부실을 떠안고 수백억의 이자비용을 감당해야만 했다. 건설경기가 완전히 죽었으니 신규 수주도 없었고 신용등급은 떨어졌다. 모기업인 두산그룹은 두산건설을 살리기 위해 지원을 이어나갔지만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태로 인해 탈원전 기조가 형성되어 두산중공업도 상황은 여의치가 않았고 두산그룹은 그렇게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부동산 경기부양에 드라이브를 걸었고, 2016년 Fed가 금리를 낮추면서 부동산 시장에 열기가 돌기 시작했으나 눈덩이처럼 쌓인 빚을 해결하기에 떄는 이미 늦었고 다시 정권이 바뀐 2020년, Covid19를 맞이하면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은 두산그룹은 최근 두산건설 뿐만 아니라 두산공작기계, 두산인프라코어 등 핵심 계열사들을 매각 등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해 살아남는데 성공한다.
'탄현 프로젝트'로부터 시작된 두산그룹의 위기는 뼈를 깎는 인고의 시간과 구조조정으로 일단은 해결된 것처럼 보인다. 핵심적인 계열사들을 떠나보냈지만 덕분에 채권단 관리로부터 졸업했고 주력인 두산중공업의 기존 원전 사업에 더해 소형모듈원전, SMR이 각광 받으면서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돌이켜보면 두산그룹의 위기는 2009년 매출 2조, 영업익 약 1,300억에 불과했던 두산건설이 총 사업비 2조에 달하는 '탄현 프로젝트'에 무리하게 참여하면서 시작된 셈이 아닌가 싶다. 물론 당시 서브프라임 사태가 부실의 주된 원인이기는 했겠지만 본인 체력을 과대평가한, 혹은 무리한 공사를 따내려는 당시 두산건설 수뇌부가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일산 제니스를 시작으로 한 두산그룹의 흥망사는 인플레이션으로 공사비가 연 15% 이상 오르고 (최근 20년 평균은 4% 가량이다.) 이를 잡기 위해 금리를 한번에 50bp씩 인상하는 이 시점에서 반드시 돌아봐야할 주제가 아닌가 싶다.